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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일어나는 터널링: 우주론적 진공 붕괴 가설

by 후즈니 2025. 12. 3.

양자역학의 터널링 현상은 미시 세계의 특이한 거동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대 우주론과 양자장론에서는 이 개념을 광대한 우주 전체에 적용하며,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물리 법칙이 언제든 전혀 다른 형태로 전환될 가능성을 논한다. 이를 대표하는 개념이 바로 우주론적 진공 붕괴 가설이다. 이 가설은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가 안정적인 상태가 아닐 수 있으며, 양자 터널링을 통해 더 낮은 에너지의 진공 상태로 ‘대전환’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진공 붕괴의 물리적 의미, 터널링 과정, 그리고 실제 우주의 매개변수가 어떤 시나리오를 지지하는지 정리한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터널링: 우주론적 진공 붕괴 가설
우주에서 일어나는 터널링: 우주론적 진공 붕괴 가설

진공의 개념: 비어 있는 공간도 하나의 양자장이다

일반적으로 ‘진공’이라 하면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떠올리지만, 현대 물리학에서 진공은 단순한 공허가 아니라 다양한 양자장이 최소 에너지를 유지하는 배경 상태를 의미한다. 특히 힉스 장은 우주의 입자 질량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이 장이 어떤 값에 머무르는지가 곧 우주의 진공 성질을 결정한다. 힉스 퍼텐셜 그래프에는 여러 개의 골짜기 형태가 등장할 수 있는데, 우리가 속한 골짜기가 반드시 가장 안정적인 최저점일 필요는 없다. 만약 현재의 진공 상태가 국소적으로는 안정되어 보이나 전역적으로는 더 낮은 골짜리가 존재한다면, 그 상태를 준안정 상태라고 부른다. 이 경우, 우주는 더 낮은 에너지 상태로 전이할 잠재성을 내포한다.

이 전이가 자연스럽게 발생하기 어렵다는 점은 고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힉스 장은 매우 큰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정상적인 과정으로는 장벽을 넘어갈 수 없다. 그러나 양자역학적 확률 현상인 터널링이 이를 허용한다. 즉, 우주의 진공 상태 전체가 에너지 장벽을 확률적으로 관통해 새로운 상태로 도약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진공 붕괴 메커니즘: 우주 규모의 양자 터널링

진공 붕괴는 미시적 입자의 터널링과 동일한 수학적 구조를 갖는다. 단일 입자 대신 ‘우주 전체의 장 상태’가 장벽을 뚫는다는 점만 다르다. 이 과정은 먼저 진짜 진공을 가진 작은 ‘기포’가 공간의 어느 한 점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기포는 내부에 진정한 진공 상태를 가지고 있으며, 외부의 준안정 진공과 비교해 에너지가 더 낮다. 진정한 진공을 가진 영역은 고전적으로는 생성되기 어려운 상태지만, 양자 터널링을 통해 확률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기포가 생성된 이후의 전개다. 기포가 생기면, 그 경계면은 빛의 속도를 넘는 속도로 팽창하며 주변 공간을 새로운 진공 상태로 덮어 나간다. 기존의 물리 법칙, 상수, 입자 질량, 상호작용 강도 등이 모두 재정의되는 영역이 기포 내부에 형성되기 때문에, 이 변환은 기존 우주 구조를 유지할 수 없다. 전자나 원자 구조가 유지되는 것은 힉스 장 값과 전자기 상수, 강한 상호작용의 결합 상수 등에 의존하므로, 그것들이 변하면 물질의 안정적 존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변화가 국소적인 사건으로 시작되지만, 이후에는 빛보다 빠르게 확산되어 우주의 법칙을 순식간에 재편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감지할 시간조차 없이 발생하는 절대적 전이이며, 우주적 규모의 '단번에 일어나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우주에서의 가능성: 표준모형이 제시하는 시나리오

진공 붕괴는 단순한 이론적 사고 실험이 아니라, 실제 물리 상수를 기반으로 한 계산에서 유의미하게 등장한다. 핵심은 힉스 보존의 질량과 위크 상호작용 상수이다. 현재 측정된 힉스 보존 질량은 약 125 GeV로, 이는 표준모형의 파라미터 공간에서 진공이 완전히 안정한 영역보다는 준안정 영역 쪽에 위치한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진공이 절대적 최저점이 아닐 가능성을 열어두는 값이다.

다만, 준안정이라는 것은 당장 붕괴한다는 뜻이 아니다. 계산에 따르면 현재 우주의 수명과 비교할 때 진공 붕괴가 일어날 확률은 극히 낮으며, 우주의 남은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터널링 확률은 장벽의 높이와 두께에 의해 지수적으로 억제되기 때문에, 현재의 진공 상태가 실제 붕괴를 겪을 가능성은 사실상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다고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나리오는 양자장론이 예측하는 가장 근본적인 우주적 운명 중 하나라는 점에서 물리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우주론적 진공 붕괴는 양자역학적 터널링 개념을 우주 전체로 확장한 극단적인 현상으로, 표준모형의 파라미터에 의해 가능성이 존재하는 시나리오다.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가 진정한 최저 에너지 상태가 아니라 준안정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장구한 시간 스케일에서 양자 도약이 일어나 우주가 새로운 법칙으로 재편될 여지가 있다. 이는 우주론, 입자물리, 양자장론을 아우르는 심오한 이론으로, 현실적 위험을 논하기보다는 우주의 구조와 법칙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넓히는 데 큰 의미를 가진다.